형이상학 강의

2012. 4. 28. 14:33


  원제는 Metaphysics: A Contemporary Introduction 3rd Edition 이다. 


  철학은 학문의 왕이었다. 이 표현은 마치 왕년에 내가 제일 잘나갔던 사람이라고 떠들던 한 아저씨의 허세 같은 자조적인 느낌이 있다. 수많은 분과학문들이 역사속에서 독립해서 나갔다. 이제 남은 것들은 철학의 잔여물인가? 아니면 본질일까? 과학과 함께 하던 철학은 이제 예술과 더욱 친근하게 활동하고, 문화비평 같은 철학이 유행한다. 따라서 철학이 학으로서 성립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이 따라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에 대한 답은 나는 회의적이다. 성립된 학의 근본에서 다시 묻고 시작하는 철학의 특성상 언제나 고정적인 토대는 없고, 토대를 기반으로 쌓아가는 다른 학문과는 질적으로 다르니까. 이런 특성이 철학의 지위를 약화시키는가? 나는 이것이 철학의 근본 목표고 매력포인트고 분노포인트라고 본다.


  철학도 수많은 분과가 있다. 논리학, 존재론, 윤리학, xx철학 등 등. 적어도 철학이 다른 학문과 구분되는 정체성을 갖을 수 있다면,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일반원리를 밝혀내는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은 존재하니까 말이다. 이것이 형이상학이다. 현대는 이론물리학이 세계의 근원을 탐구하고 있겠지만, 과학 탐구 방식의 정당성을 다시 한 번 캐물을 수 있기에 형이상학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여전히 유효하기에, 끝이 없는 유효함이 아닐까라는 회의감마저 든다.)


  그런데, 존재하는 것들의 일반원리는 그야말로 추상적이다. 모든 것이 존재하고 그것들을 하나로 묶는 원리를 찾는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으며, 탐구가 가능하기라도 한걸까? 그러니까 역사속에서 수많은 거장들은 형이상학에 대해서 두꺼운 책을 하나씩은 썼다. 책 제목만 달랐지,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결국 형이상학을 탐구했다고 봐야한다. 근본에서 시작하는 작업이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철학에 관심있는 사람이 과연 철학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형이상학 혹은 존재론의 탐구를 살펴볼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형이상학의 핵심 주제들인 보편자 실재론, 유명론, 기체 이론, 다발 이론, 실체 이론, 명제, 가능 세계, 인과성, 시간, 개체의 지속, 실재론과 반실재론과 같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미국철학자이고 분명히 영미 분석철학 전통에 서있다. 따라서 흔한 편견인 수많은 기호논리학을 이용하여, 언어를 분석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할 수 있다. 오히려 어려운 주제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라는 걱정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은 학부 교과서를 목표로 서술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호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주제별로 논점이 분명하고 양측의 논점이 어떻게 서로를 공격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것이 싸움 구경이라고 논쟁 또한 하나의 흥미거리이다. 또한 주제들이 체계적으로 쌓아져 올라간다. 물론 내용 자체가 생소하고 깊이가 있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깊이 있는 형이상학에 대해 알려고하는 자에게 이책만큼 명확하게 서술한 책은 처음본 것 같다.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이 주제가 어떻게 논란이 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단, 영미철학전통에 있기 때문에 흔한 칸트,헤겔, 베르그송 등은 나오지 않는다. 이것이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철학책 하면 추상적인 고도의 사유체계가 읽는이를 압도하는 선입견은 이들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영미철학은 가볍다는 느낌을 받거나, 삶과 동떨어져 언어분석만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20세기 영미 분석철학 전통은 언어를 통해 전통 철학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핵심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선입견을 깨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그들은 결국 형이상학의 근본 주제에 도달했고 그 극단에서 논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책들이 과연 무슨소리를 하나 싶을 때가 있다. 이럴 때는 그들의 문제의식이 무엇이었냐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철학자들은 문제를 만들거나 파악하고 스스로 해결하려한다. 따라서 문제 자체부터 파악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인데, 대부분의 철학책은 친절하지 않다. 문제가 보이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는 읽히기 시작하고, 씹는맛이 생긴다. 그리고 경이롭고 절망적으로도 다가온다. 이 점에서 철학사는 반드시 익혀야한다. 철학사를 배운다는 것은 결국 문제의식의 흐름을 배운다는 점에서 중요하니까. 이 책의 장점은 철학사보다는 문제별로 엮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문제에 들어갈 수 있게 도와준다. 전통적인 형이상학내에 있는 것이라면, 이 책은 적어도 하나의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elench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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