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랑 바디우, 알랭 바디우? 여튼 이 철학자는 들뢰즈의 반대편의 지점에 있던 사람으로 알려진 것이 나에게는 전부였다. 어쨌든 철학자인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주제로 얘기하는 철학자는 생각보다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 제일 유명할터이고, 플라톤의 향연? 대부분 사랑은 심리학자들이 저술한다. 따라서 희소 가치만으로 이 얇은 책을 집어들게 만들었다.
개인적인 생각들. 사랑이 무얼까? 왜 이토록 도취되고 아파하는 행위를 우리는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바디우는 사랑은 차이 속에서 둘의 끊임 없는 선언이고, 구축이라고 말을 한다. 이 말 뜻을 내 식데로 풀면, 차이 나는 두 인간이 만나서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둘만의 이야기인 것이다. 시작되면 의지를 가지고 끊임없이 만들어가라. 사랑에 교과서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랭보의 말을 인용한다. "사랑은 재발명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곰곰히 읽으면 그럴듯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지점을 바디우도 정의 내리지는 못하고 있다. 즉 사랑의 시작에 대해서, 그리고 그 사랑을 지키는 의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우리는 모두 차이나는 인간들이다. 근대 왜 특정한 인간에게만 사랑을 느끼는 것일까? 그리고 시작된 사랑의 지속은 의지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의지 자체를 생기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즉 의지의 의지일까? 의지의 차이를 만드는 그 무엇! 그것이 사랑의 지속의 결정적인 요소가 아닐까?
따라서 바디우도 우리와 똑같이 사랑의 미스테리한 부분을 인정하는 듯 보인다. 또한 지속이라는 것을 굉장히 중요시함으로써 이상을 얘기하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다. 그 이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가 사랑의 최고의 모습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철학자가 쓴 현대판 사랑의 동화 같다.
그가 사랑의 시작을 해명했다면 조금 속 시원하게 풀릴텐데... 지속을 얘기하기 전에 시작을 해명해야하지 않을까? 시작 없는 지속이란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우연한 사건은 모두 우연한 사건이니까 말이다. 우연한 사건 중 유독 왜 그 사건만이 사랑이라는 사건으로 벌어지는지가 나는 정말 궁금하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에 대한 해명에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사랑이 재발명되어야 한다는 부분과 교과서가 없다는 부분은 크게 동의한다. 수많은 연애 지침서. 남자는 찌질해져서는 안되고, 여자는 된장이어서는 안된다는 얘기들. 사랑은 교과서를 쓸 수 없을 뿐더러 무엇인가를 쓴다면 그것은 일반론일 뿐이다. 평균적인 활동이 과연 사랑일 수 있을까? 차이 그 자체 속에서 둘이 창조하는 새로운 것들. 시작의 미스테리는 모르겠지만, 분명 사랑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사랑에 절대란 것은 없다는 것을. 내가 이런 모습이 있었나라고 놀라는 자신을.
또한 한눈에 반해서 불타는 순간만이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반대하는 지점도 나는 동감한다. 불타오르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이별하고, 사랑을 씁쓸하다 생각할 것이다. 분명 그 둘에게 펼쳐질 또 다른 이야기가 있을 것인데 말이다.
이 책은 대담집이고 굉장히 얇다. 또한 철학 개념어가 상당수 나와 버겁기도 하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사랑에 기뻤거나 아팠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읽을만하다. 때로는 배우지 않아도 다가오는 것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이 책 속에는 내가 정리한 방식보다는 풍부한 것들이 더 숨어 있으리라 믿는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날 다시 보면 새롭게 보이겠지? 근데 알 수 있을까? 사랑은 몰라도 이별은 알 것 같다던 김광진의 '아는지'라는 노래가 떠오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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