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실재 일본에서 2000년도에 출판된 책이다. 따라서 두 가지 점에서 우리의 실정과 맞지 않다.
첫째로, 시점의 문제다. 저자의 출생년도는 1932년이다. 일본식민지 시대에 한국에서 살았고 일본의 패망으로 난민시절을 살다가 일본으로 돌아가 자수성가하여 지금의 작가가 되었다. 소위 말하는 전쟁의 시대, 위기의 시대에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청춘기를 보냈다. 이 책이 쓰여지던 시기는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청년들, 나라의 방향성을 잃던 시절에 원로로서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의도로 쓰였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 지역의 문제다. 근현대 일본이 배경이다. 따라서 전쟁을 일으킨 일본과 전쟁에서 진 일본, 경제 대국으로 일어선 일본과 거품이 꺼지던 일본이 배경이다.
이 두 가지 점에서 우리나라 실정과 맞지 않고, 읽는 내내 느껴지는 위화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공감을 얻어내는데 성공한다면 바로 타력이라는 하나의 주제이다. 타력은 자력에 대비되는 말로 불교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불교에서 나무아미타불을 염불을 외우면 우리가 극락왕생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즉 자신의 구원은 자신의 혼자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다른 거대한 존재, 에너지, 근원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저자는 확대하여, 우리 삶을 이끄는 것은 사실 우리의 힘 보다는 더욱 큰 거대한 것이 있음을 강조한다. 진인사 대천명에서도 스스로 노력하는 것도 어쩌면 다른 힘(타력)에 의거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이는 실재로 세계가 그렇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실증은 차치하더라도, 하나의 인생태도로서는 주효하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어떠한 성공도 운이라고 본인은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성공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라는 에디슨의 말로 자신의 노력을 강조하고 한다. 이 말의 실상은 에디슨이 똑같이 노력해도 1%의 영감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음을 강조하는 말이었다. 즉, 자신은 당신들보다 1%의 영감을 갖고 있음을 강조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광복후 경제화를 겪던 시절에 노력하면 안되는 것이 없다고 우리 시대는 강조했다. 여지껏 그 생각들은 남아서 우리를 닦달한다. 대표적인 예는 무수히 많다. 개천에서 용났다는 표현으로 대변되는 무수한 성공사례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의 저자의 성공. 자수성가한 수많은 정치인, 경제인들. 과연 성공이 그들만의 노력만으로 이뤄졌는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의 출발점이 똑같던 시절은 노력은 하나의 기준이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는 어떠한가? 하나의 구조가 완고하게 서있는 지금에서 노력만으로 성공을 이룰 수 있을까? 100명중 1명이 성공할 수 밖에 없는 구조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1명만 성공할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도 성공신화가 쓰여지고 있다. 그러나 그 지점은 구조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새로운 영역이라고 본다. 그리고 구조내에서 성공은 자력이 아닌 바로 구조의 타력일 것이다.
성공뿐만이 아닌 생노병사로 시각을 확대해본다면, 타력은 거의 절대적이라 본다. 인간은 결코 혼자일 수 없고, 혼자로서 영원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의 인생관으로서 타력이 과연 얼마만큼 설득력이 있을까? 저자의 타력관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나는 회의적이다. 저자도 자력은 또다른 타력임을 강조한다. 이 말은 사실 모순이다. 귀동냥으로 들은 나의 지식으로 설을 풀자면, 주체는 타자를 전제로 한다. 즉 타자를 부정함으로써 나가 성립하고, 이는 계속 진행된다. 즉 자와 타의 구분은 사실 명목상 구분이다. 자력이라고 하는 말 속에 이미 타력이 전제가 되어 있고, 타력이라고 하는 부분에 자력이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관점에서 접근해도 우리는 두가지 모두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저자가 타력으로 시각을 돌리라 주장함은 사실 무기력한 현실을 여유롭게 바라보자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그 이상이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이 책을 읽는 독자가 과연 위안을 얻을 수 있을까? 그냥 그렇구나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자력을 주장하든 타력을 주장한든 무기력한 위기의 현실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이 책은 주제는 참신할 수 있었지만, 무기력한 실용서, 에세이 정도만 되는 것이다.
위에서 얘기했듯 두가지 차이를 더해서, 책 자체의 문제로 접근하면, 저자는 타력이란 주제에만 초점을 맞춰 얘기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저자가 그냥 끄적여놓은 에세이의 나열이다. 깊이 없는, 그저 일기장 같은 느낌이다. 초반 타력부분에서 무언가를 보여줄 것 같지만, 그냥 삶은 힘든 것, 저자는 힘들게 살았어, 난 이런거가 맞다고 생각해를 나열해 놓았을 뿐이다.
힘을 주는 책은 곱씹을 수 있고, 곱씹을 수록 새로운 맛이 나는 책이라 본다. 게다가 우선 곱씹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왜 이 시점에 한국에서 번역되어 출판되었는지 알 수 없는 책이다. 저자가 일본에서 잘나가는 작가인지는 모르겠으나, 저자가 성공한 책에 기대어 쓴 에세이집이 또한 훌륭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로는 적당한 것 같다.
(사족 : 삼성 이건희 회장이 추천한다는 광고만큼 타력적인 것을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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