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변한다. 분명 봤던 영화인데도, 다시 보게 되면 그 느낌은 다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영화는 적어도 개봉 초기에 한번, 그리고 몇 년 후 한번 봤을 것이다. 그 때는 분명 아무 느낌이 없었다. 그저 복잡하게 기억을 꼬아놓은 영화라고만 생각했다. 난 메말라 있었다. 마치 남자 주인공 조엘 처럼. 영화를 과학적으로 보려했지, 전혀 감동을 얻을 수 없었다. 

  이번에 보고 큰 감동을 느껴, 아 이젠 나도 말랑말랑해졌는가 싶기도 하지만, 여전히 영화속 그들의 행태에 딴지를 걸고 싶은 뒤틀린 심통이 난다. 

  조엘인 짐 캐리는 클레멘타인인 케이트 윈슬렛을 만나기전 2년간 동거했던 여자가 있었다. 그리고 자유분방한 기분파 클레멘타인을 만나고 또 2년을 지낸다. 서로 다르지만 사랑했던 그들. 결국 그 다른 지점에 서로 지쳐간다. 2년이면 정말 사랑했나보다. 오래 갔으니 말이다.
  영화속에서는 확실하게 묘사가 안된다. 과연 클레멘타인이 울컥하는 기분으로 기억을 지웠는지, 아니면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는지를. 난 믿는다. 아무리 기분파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는 생각외로 진지하다고. 그렇다면 클레멘타인은 이미 이별을 준비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 고통을 견딜 수 없어 기억을 지운 것이 아닐까? 마치 조엘도 따라 지웠듯이.

  자주 회자되는 마지막 장면. 새로 시작해도 똑같이 반복될 것이니 그래도 괜찮냐? 오케이를 서로 주고 받는 장면은 난 조금 씁쓸하다. 헤어진 연인들은 결국 다시 헤어질 것이라는 평범한 통념이 이들에게는 오히려 적용이 되지 않기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기억이 리셋되었기 때문에 처음의 그 떨림으로 반복할 수 있는(정확히 반복이랄 수도 없다. 그들은 리셋되었으니까) 것 아닐까? 아픔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저 강렬한 두 번의 끌림이 그들에게 놓여 있다. 

  또 다른 모순점. 조엘은 꿈(기억)속에서 지워지는 그녀와의 기억을 지키려 노력한다. 그가 그토록 힘들어서 지우려 했던 기억은 그의 전부였고, 그의 세계였고, 그의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행복도 없으면 불행도 없고, 불행도 없으면 행복도 없다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모순을 보여준다. 

  감독은 운명을 얘기하려 한 것일까? 기억에 대한 얘기를 하려 한 것일까? 오히려 운명이란 것은 처음 만나게 되는 그 찰나의 순간에만 성립되는 것 아닐까? 아니면 처음의 끌림에 우리는 운명이라고 이름짓는 것 아닐까? 이 지점에서 의사의 비서였던 커스틴 던스트가 의사와 만남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가 나는 궁금하다. 기억은 과거라고 얘기하지만, 기억은 다가왔던 미래였으니까 말이다. 즉 기억은 다르게 쓰여질 수 있다. 이 점에서 운명처럼 끌린 커스틴은 환멸을 느끼고 떠나는 것이 나에게는 더 수긍이 갈 것 같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와 찐한 사랑을 한다면 이 영화는 또 다시 다르게 와닿지 않을까싶기도 하다. 결국 사골 같은 작품들이 좋은 작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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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lench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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