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윌 헌팅 (1998)

Good Will Hunting 
9.3
감독
구스 반 산트
출연
로빈 윌리엄스, 맷 데이먼, 벤 애플렉, 스텔란 스카스가드, 미니 드라이버
정보
드라마 | 미국 | 126 분 | 1998-03-21
글쓴이 평점  


  올해가 2012년이니, 참으로 늦게 본 영화다. 14년 만에 본 것이니까. 좋은 영화라는 얘기, 치유하는 얘기는 많은 곳에서 인용되었지만, 실재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구스 반 산트는 엘리펀트만으로 기억했었는데, 같은 감독이라니. 게다가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어서 꽤나 매력적이었다. 각본을 이 둘이 썼다고 하는 사실도 처음에는 의아해서 몇 번이고 검색해봤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각본상까지 수상했다고 한다. 알고보니 둘이 어려서부터 친구였다. 


  멘토라는 단어가 유행하는 시대에 로빈 윌리엄스는 하나의 좋은 모범이 아닐까? 로빈 윌리암스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캡틴처럼 좋은 선생님으로 나온다. 그 자신 또한 아픔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면서, 맷 데이먼의 아픔을 드러내고 직시하게 만든다. 자연스럽게 치유가 되도록한다. 이제는 워낙 영화든 드라마든 책이든 많이 인용되는 치유의 과정이라서 오히려 심심하기까지하다. 마음을 여는 과정,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면서 상처를 긍정하게 되는 과정,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나가는 마지막 장면까지. 개봉당시 봤다면 꽤나 감동적이었을 장면들이 진부하게 느껴지는 나는 이미 순수함을 잃어 버린 것일까? 생각보다 빨리 혹은 너무 쉽게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말랑말랑한 치유서들이 범람하는 시대다. 그만큼 상처받은 영혼들이 많다는 것일까? 아니면 작은 상처에도 흔들리는 연약한 영혼들이 많다는 것일까? 나는 둘이 악순환의 상승관계에 있다고 본다. 분명히 오늘날은 경쟁에 내몰리는 불안과 공포의 시대이고,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자신은 소중하다고 강조하지만, 자신의 평범함을 드러낼 뿐이다. 이것은 관계들의 왜곡을 나타내며, 스스로에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시대이다. 이것을 지적하여 드러내는 책들은 자신들의 상처가 세상의 큰 짐이나 된 마냥 피해자의식을 생산한다. 자신의 상처는 당연한 것이 되고 결국 그 상처를 타인에게 전가시키는 또 하나의 상처를 만든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미명하여 자신만을 사랑하는 행태가 배려없는 또하나의 상처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른과 아이의 차이. 로빈 윌리암스는 맷에게 투덜거리는 아이일 뿐이라고 한다. 거기까지 동의하지만, 로빈 윌리암스도 어른이었던가?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이가 주는 것들을 빼고 생각한다면, 둘은 똑같은 아이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아니면 조금 큰 아이, 작은 아이일 뿐이지 아닐까?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우리는 언제나 성장의 과정중에 있는 것이 아닐까?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우리는 어른이 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차이가 있다면, 그 미묘한 차이를 내가 파악할 수 없다면, 난 역시 아직 아이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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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lench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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