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신,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 8점
아라 노렌자얀 지음, 홍지수 옮김, 오강남 해제/김영사



이 책의 원제는 Big Gods: How Religion Transformed Cooperation and Conflict 이다. 짧은 영어로 번역하면 거대한 신 : 어떻게 종교는 협력과 반목을 변형시키는가이다. 한글 제목이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신학서적쯤으로 분류되어야할 것 같은 냄새가 난다. 기독교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팽배해있는 요즘, 기독교 냄새가 나는 책 제목은 정말로 잘못되었다. 이 책은 종교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에 대한 연구서이다. 주제가 신일뿐 서술과 연구 방식은 영미의 학문연구방식을 따른다. 따라서 무슨 생각으로 저런 한국제목을 붙였는지 알 수가 없다. 


초월적 감시자로서 거대한 신의 출현이 집단과 개인간의 협력을 발생시키고 유지지켜 거대한 사회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 요지다. 근대적 감시와 처벌체계가 없을 때 신이 이를 대신하여 사회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역으로 근대적 감시와 처벌체계가 발달된다면, 거대한 신의 필요성은 사라지고, 무신론자가 증가하게되며, 이에 대한 예로 무신론자의 나라 북유럽을 제시한다. 


 책의 초반에 저자는 자신이 전개할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거대한 신,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에서 말하는 주요한 여덟 가지 믿음


이 책의 모든 주장은 상호연관된 여덟 가지 믿음으로 요약된다.

① 보는 눈이 있으면 언행을 삼간다.

② 종교의 효과는 개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③ 지옥은 천국보다 훨씬 설득력이 강하다.

④ 신을 믿는 사람들을 믿는다.

⑤ 신앙심은 말보다 행동으로 증명된다.

⑥ 숭배 받지 못하는 신은 무력한 신이다.

⑦ 거대한 집단에는 거대한 신이 필요하다.

⑧ 종교집단들은 다른 집단과 경쟁하기 위해 자기 집단 내에서 서로 협력한다.



역사적인 사례, 심리학적 실험, 진화론적 설명들을 곁들여 지나치게 풍부하게 각 주장들을 뒷받침한다.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장점이다. 그러나 학자가 아니어도 일반 교양서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흥미로운 사례들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게 해주었다.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번쯤 궁금하다면 좋은 교양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통찰들이 숨쉬고 있기에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사회집단의 협력의 문제와 거대한 신과의 관계를 다룬다. 거대한 신이 섬세한 사법체계가 없는 곳에서 법률과 사회제도로써 작동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근대적 사회제도 없이 사회를 유지시키고, 성장시킨다는 것을 논증한다. 매우 그럴듯하다. 


저자는 사회적 안정(security)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실존적 안정을 위한 조건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살기 위해 안정이 중요하고, 이를 필요로 하며, 이것은 예전에는 거대한 신이, 현재는 근대적 사회제도, 법규 등이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나의 작은 반론은 이것이다. 종교가 사회적 협력을 촉진했고, 개인은 그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그 사회는 발전했다는 것은 어찌보면 생존자 편향에 빠진 것이 아닐까? 분명 저자가 주장하듯 거대한 신은 성공했고, 거대한 사회를 만들어냈다. 그렇지만, 거대한 신이 더 이상 필요치 않은 북유럽의 개인들에게 실존적인 위기는 해소된 것일까? 사회적인 안정이 과연 실존들에게 절대적인 것일까? 자살률이 높다는 사실은 여전히 무언가 빠져있는 것이 아닐까? 생의 의미의 보증자로서의 신은 그래서 중요하다고 본다. 여전히 종교활동에 매몰되어있는 인간들의 무리들이 이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저저가 주장하듯 실재가 어떤지는 무관하게 우리는 우선, 직관적으로 심신이원론자이고, 독립적인 영혼이라는 것을 믿으며, 이는 신이라는 어떤 대상을 떠오르게 만든다. 변전하는 세계에서 불사인 영혼. 이는 변전하는 의미의 바다에서 변하지 않는 의미의 보증자가 된다. 생의 의미의 보증자. 이것이 인간의 삶을 덧없는 것이 아닌 의미로 가득차게 만들고, 가득찬 의미가 단지 환상이 아닌 신에 의해 보증된 의미가 되며, 삶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던 것이 아닌가? 죽음 이후를 약속하는 신이 현재 삶을 더욱 생생하게 만드는 아이러니. 그래서 도덕의 관점에서 신을 해석하는 문제는 뭔가 중요한게 빠져있는것 같다. 물론 의미의 보증자 또한 사회의 성장에 필요한 개인들의 생존에 영향을 미친다고 거대 신과 사회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의미를 개인에게 제공하고 보증하며, 의미가 필요한 개인이 삶을 살만한 것으로, 혹은 견디도록 만드는 신. 그렇지만 이것이야말로 생존자 편향 아닐까? 성공해서 살아남으면 그것이 원인이라는 편향 말이다. 그렇지만 의미를 갈구하는 인간들이 자살하고, 사회가 붕괴되는 그런 상황도 가까운 미래에 발생할 수 있지 않을까? 신은 죽었으니까. 아니면 의미를 갈구하던 죽은 인간들은 이미 죽었으니 말이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무의미를 견디는 방법을 발명하든가, 아니면 무의미를 즐기든가.


인간이 왜 덧없는 것을 두려워하고, 변하지 않는 것을 그리도 갈구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리고 변화를 온몸으로 즐기는 그런 인간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많을것 같지 않다. 아마도 인간은 신을 발명했고, 발명했다는 사실은 반드시 잊으려고 노력해야했고, 노력하다보니 잊는 것을 성공했으며, 그래서 신은 하늘에서 떨어진 우리를 초월해 있게 된다. 신은 우리와는 달라야 하고, 초월해 있어야만 한다. 신이 우리와 같다면 같다는 사실만으로 신은 더이상 신이 아닐테니까.


어쨌든 나의 물음을 차치하더라도, 주장은 간결하고, 논거는 풍부하게 서술된 좋은 책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라는 한국제목은 여전히 맘에 안들지만. 


Posted by elench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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