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순수했던 네팔에 외지관광객들이 몰리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은 그런 생각에서 적게되었다. 



순대국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싸고 푸짐하고 따뜻하고. 순대국마저 프렌차이즈화되어서 정준하 광고하는 집은 절대 안가고, 동네 골목에 지나가다 괜찮아보이면 틈틈이 여기저기 도전해본다. 순대국은 동네 음식이어야한다는 믿음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수요미식회 이틀전에 방송된 순대국집에 다녀왔다. 평소에 순대국을 좋아하기도 하고, 서울이야 대중교통이 편리하니까 한 번 가보자 싶었다. 원래 방송 직후에는 찾아가지 않는 것이 권장이자 원칙이지만, 궁금했다. 방송직후의 가게의 모습은 어떨까? 사람들이 정말 막 줄 서 있을까? 순대국인데 설마.


도착하니 줄은 서있지 않았지만, 문앞에서 어떤 노인분이 재료가 떨어졌다고한다. 재료가 떨어졌다는 것은 오늘 장사가 끝이란걸까? 점심에 사람들이 정말 많이 왔었나보다. 그런데, 노인분이 재료를 삶고 있고,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단다. 얼마나 걸리냐고 물으니, 내가 잘못들은건지, 아니면 말끝을 흐린건지 모르겠다. 혹시 이 가게와 관계없는 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주인되시냐고 물어보니, 제대로 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말끝을 흐린건지, 아니면 내가 못들은건지는 모르겠다. 여튼 들어가서 물어보자는 생각으로 들어가니, 한명인데 얼마나 기다리면 되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종업원이 합석하라고 말한다. 속으로는 '뭐야. 팔고 있었던거야? 아까 저 아저씨는 뭐지?'라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여튼 합석도 괜찮으니 앉아서 기다리겠다고 하고, 앉아서 주문을 했다. 따로(6천원)만 된다고 한다. 보통(5천원) 먹고 싶었는데. 속으로 '장사 좀 된다고 벌써 가격을 올린걸까?'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찬찬히 앉아서 음식을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조금씩 상황파악이 되었다. 우선 고기가 다 떨어져 다시 삶고 썰고 있던것은 맞았다. 홀 안에 아직 주문을 받고 음식을 받지 못한 사람이 많았으며, 포장주문까지 밀려있었다. 즉 가게 안은 이미 포화상태. 보통 가게 같으면 손님을 받지 못해도 불만이 나오지 않을 수준이었다. 가게 안에 종업원이 많은걸로 봐서는 평소에도 충분히 손님이 많은 식당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것조차 초과해버리는 사태이니, 아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체계적인 일사분란함을 느끼지 못했다. 앞에 합석한 중년남녀는 식사를 마치고 왜 포장이 안나오냐고, 주문을 몇 번이냐 한거냐? 인내심을 테스트하는거냐?라며 짜증을 냈다. 그러나 상황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다른 분이 설명하며 미안하다고 한다. 중년남녀가 툴툴거리며 나가자 테이블을 정리하려고 종업원이 왔다. 그 종업원이 어디까지가 내 자리냐고 묻고, 내가 땅따먹듯이 선을 그어주니, 서로 웃으면서 치워줬다. 앉아서 음식을 기다리면서 아마도 사장님 되는 분이 문앞에서 고기 없는데 손님좀 그만 받아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한 두명씩 툭툭 들어온다. 왜 자꾸 들여보내냐고 타박하고, 그제서야 막는거 같은데, 제대로 막는 법을 모른다. 그제서야 내가 문앞에서 겪었던 것이 이해가 되었다. 여기는 손님을 막지 않는 곳이구나, 막을 줄 모르는구나. 어쨌든 고기를 삶으면 되니 거짓말을 못하는구나싶었다. 이때부터 시각과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흔히 자본주의 시각에서, 예전에 기억하던 동네식당의 시각으로. 그렇게 바뀌니 모든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정겹기까지 했다. 단골로 보이는 손님들은 동네 주민들처럼 보였다. 일 끊나고 가볍게 식사와 반주. 갑자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여기도 자본주의 폭탄을 맞게 되는걸까? 방송타고 안망가진 집이 없는데. 외지인들이 몰리면 결국 단골이 사라지는 아이러니. 거기에 주인의 욕심이 가세하면 그 집은 그냥 공장이 된다. 빠른 회전율을 위한 효율과 생산성만이 최선이 되는 공장. 다만 순대국이라는 특성상 찾아와서 줄서서 먹을 메뉴가 아니라는 생각에 아주 짧은 방송효과를 가져갈 것으로 예상된다. 아니라면 괜찮은 순대국집이 사라져서, 이제 순대국마저도 맛집을 찾아다녀야하는 상황이 될지도. 


둘러보니 동네 일마치고 오신분들이 한잔하고 싶은데 그냥 발걸음을 돌리는 모습을 보고 좀 안타까웠다. 순대국의 맛은 뭐 특별한거랄게 있을까? 물론 평범한 순대국맛도 못내는 곳이 요즘은 너무나 많으니까, 평범함이 특별해진달까? 왜 조미료를 쓰는지 모르겠다. 담백해야할 국물이 들척지근해진다. 그걸 가리려고 다대기를 엄청 투여하는 악순환. 국물에 자신있는 집은 다대기를 따로 내어준다. 다대기 없이도 맛있는 국물을 내는 집이 요즘은 많지 않다. 좋은 국물은 좋은 고기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집은 고추가루가 미리 들어가는데 과하지 않아서 좋다. 또한 다진 마늘을 따로 내어준다. 마늘이 들어간 순대국을 속초에서 처음 먹어본 이후로, 왜 서울은 그런 것이 없을까 생각하던 차에 다진마늘이 함께 나와 맛있게 먹었다. 고기도  푸짐하고 신선했다. 순대국은 완전 맛있기도 힘들지만, 그 맛의 평범함을 유지하기란 정말 어려운 음식 같다. 


이렇게 여러 생각을 하면서 맛있게 먹고, 계산을 하려고하니, (그 와중에도 손님을 받냐 마냐로 논란이.ㅋㅋ) 많이 기다렸냐고? 잘 먹었냐고? 따뜻하게 물어봐주신다. 솔직히 감동받았다. 순대국이 몸을 푸근하게 했다면, 따뜻한 말한마디가 맘을 푸근하게했다. 어렸을 때 식당은 이랬지라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장사잘되고 손님 많은 곳은 한사람 손님을 별로 안좋아하는데. 고마워서 잘 먹었다고 인사하고 나왔다. 


나도 멀리서 온 외부인이지만, 그 순대국집은 그냥 거기 동네사람 것으로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에게는 굳이 찾아갈 필요는 없는 맛이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한번 정도는 다시 찾아가 볼 생각이다. 변했을까를 확인하려는 악취미일수도 있고, 따뜻한 마음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서일수도 있고.


(아직도 최소값이 아니라 최솟값이 맞는 표기라는게 어색하고, 순대국, 북어국이 아니라 순댓국, 북엇국이라는 것도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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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lench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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