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을 자주 보지는 않지만, 근래 경악스러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히든싱어, 복면가왕, 듀엣가요제 같은 음악예능 방송에서 음악이 나오는 그 순간에도 자막이 나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노래가사만 찍혀나오던 예전과 달리, 아마도 조연출의 감상문인 것 같은 자막들이 화면에  찍혀나온다. '깊은 성량에서 울려퍼지는 애잔한 목소리.' '폭발적인 고음의 전율,' '허스키하지만 울림이 있는 목소리' 등등. 음악에 빠지려는 순간, 감상하려는 순간순간 마다 치고 들어오는 그 자막들이 너무나 괴로웠다. 음악 자체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하나의 음, 하나의 가사, 하나의 표정, 하나의 몸짓에 나를 자유롭게 맡기고 싶은데, 감상의 모든 가능성들을 조연출이나 작가가 만들었을 그 자막에 가두어 버린다. 음악의 본질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예능프로는 시청자가 아무 생각도 못하게 해야한다, 입에 떠넣어줘야된다는 불안감이 나은 과도한 친절함 때문이었을까? 왜 저렇게 좋은 음악을 즐길 여백마저도 지워버리는 걸까? 음악과 예능을 분명 착각하고 있다. 음악은 예능이 아니다. 머리아픈 현실에서 벗어나 아무 생각없이 웃게 만드는 것이 예능이라면, 음악은 느끼는 것이다. 느낌에는 언제나 각자의 몫이 있고 정답이 없을 뿐더러 하나의 길이란 것도 없다. 그저 음악에 맡기는 것이다. 자막은 어쨌거나 글이고, 글은 느낌을 붙잡아서 하나의 생각으로 고정시킨다. 그건 분명 음악예능의 마이너스 요소다. 음악감상은 끝난 후 패널들의 얘기들로 채워넣어도 충분하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노래가사가 처음 방송에서 찍히기 시작했을 때도 누군가 비판했던 기억이 난다. 가사라는 글 자체가 음악 감상을 방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가사가 있는 노래라면 어쨌든 그 음악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지금의 상황과는 분명 다른 논의일 것이다. 가사는 그 음악의 한 부분이지만, 누군가의 감상문은 그 음악의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다. 


  안보려고 손으로 시야를 가리면 화면의 절반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너무나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무한도전의 자막을 사람들이 좋아하고, 예능에서 자막이 성공했다고 해서, 이것을 음악에 적용한다는 것은 분명 범주의 오류이다. 방송국이 시청자들의 넋나감, 아무 생각없는 상태의 효과를 노린다면 노래중에는 자막을 빼기를 권한다. 그건 지금 부르고 있는 가수에 대한 예의이자, 믿음의 표현이고, 시청자를 느낌에 몸을 맡기게 할 것이다.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주혁을 기억하며  (0) 2017.10.31
어쩌다 어른 강성태 편을 보고  (0) 2017.10.20
알파고와 윤리  (0) 2016.03.14
땅에 발딛기  (0) 2013.11.16
기계식 키보드  (0) 2013.11.15

Posted by elench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