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쓸 기억력 - 줄리아 쇼

elenchus 2018. 3. 5. 15:00
몹쓸 기억력 - 8점
줄리아 쇼 지음, 이영아 옮김/현암사


저자는 기억에 대한 심리학자이자 범죄학자이다. 따라서 이 책의 구성은 기억에 대한 일반적인 이론에 대해 서술한 후, 기억의 취약성을 역설한 후, 기억에 의존하는 범죄수사의 문제점에 대해 역설한다.


가장 흥미롭게 읽힌 부분은 기억이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의 기억뿐만 아니라, 어른의 기억도 완전하지 않다. 어른의 기억도 조작될 수 있고, 기본적으로 왜곡된다. 최면을 걸어 기억을 심는 문제가 아니라(저자는 최면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기억의 메커니즘 자체가 왜곡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무언가를 떠올릴 때, 여러 기억의 조각들을 불러내어 조합하고, 이를 다시 저장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기억하려 떠올릴 때마다, 기억은 새롭게 조합되어 저장되는 것이고, 이는 최초의 기억과 달라진다. 우리가 기억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어떤 개입이 있다면, 우리의 기억은 조작될 수 있다. 심지어 없던 사건을 기억시킬 수 있다. 이를 흥미롭게 실험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평소 생각하는 직관, 또렷한 기억일수록 ‘내 기억은 확실해’라는 자신감이 부서지는 경험이라 조금 당혹스러웠다. 즉 선명한 기억에 대한 확신이 많이 무너졌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같은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것 또한 우리의 일상과 부합한다. 우리의 관심에 따라, 우리의 성향에 따라 우리는 다르게 기억하고,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새롭게 저장된다. 


저자는 범죄학자답게 기억에 의존하는 수사에서 증인 혹은 피해자의 왜곡되기 전 최초의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수사할 때 질의가 기억자체를 왜곡시킨다는 점에 우려를 표명하며, 경찰들에 대한 수사기법에서 기억에 대한 교육을 강화할 것을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자신의 주장이 결코 가해자편에 있지 않음을 강조한다. 아마도 저자가 상당히 많은 공격을 받았었나보다. 특히 성범죄는 피해자의 기억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기에, 자신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가 피해자의 증언을 약화시키고, 가해자를 실질적으로 변호하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단언한다. 기억에 대한 이론은 과학이고, 자신은 억울한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고.


쉽고 재밌고 흥미롭게 기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기억에 의존하는 나의 이 책에 대한 기억은 정확한 것일까? 문득 그때의 사랑했던 이의 모습은 그때의 모습 속에 그대로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