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힘 - 조 스터드웰
책을 읽는 내내 좋았다. 좋은 책이다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방대한 자료, 풍부한 사례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것이 감탄을 자아냈다. 따라서 불만을 얘기함은, 불만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 즉 아쉬움이다.
우선 책 제목이 문제다. 가끔 외서의 번역에서 마케팅의 문제 때문에 제목을 새로 정하는 것 같다. '아시아의 힘'이라고 얼핏 보면, 또 하나의 오리엔털리즘을 연상할 수밖에 없다. 서구의 문제점을 해결할 아시아의 해결책, 동양의 신비, 동양의 지혜 등등.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니다. 출판사는 이러면 더 잘 팔릴거라 믿었겠지만, 책의 신뢰를 떨어트리기만 할 뿐이다. 이 좋은 책을...표지에 병기되어 있듯 '아시아가 움직이는 방식, 방법' 정도가 적당할 것이고, 그것이 책의 내용에 부합한다. 이 책은 아시아를 크게 세 지역으로, 즉, 동북, 동남, 중국으로 나누어 그들의 경제정책에 따라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가 보기에 실패한 동남아시아의 경제 정책이 과연 '아시아의 힘'일까? 또한 성공적 사례로 나오는 일본, 대만은 주춤하고 있는데, 이것도 '아시아의 힘'인가? 중국은 향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이것이 '아시아의 힘'인가? 읽다보면 책 제목은 잊고 읽게된다. 그러다 언젠가 떠올릴 때, '그래, 책 제목이 아시아의 힘이었지'라며 뭔가 어색함을 느낄 것이다.
저자의 요점은 매우 간단하고, 선명하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아시아 국가들의 사례에 대입해서, 풍부한 사례를 가지고 설명한다. 지나치게 풍부해서 책은 두껍다는 단점이 있지만, 생생한 얘기라서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요점은 곳곳에서 반복되는데,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동아시아의 경제개발 과정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3가지 요소로 성공의 비법이 간단히 정리된다. 그 3가지 요소는 바로 가족농과 수출 중심 제조업, 그리고 이 두 부문을 뒷받침하도록 긴밀하게 통제되는 금융이다. 이 비법이 성공한 이유는 개발 초기 단계에서 빈국들이 낮은 생산성을 지닌 인구를 통해 다른 방식보다 훨씬 많은 성과를 내도록 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성장을 통해 부를 창출하도록 경제를 조작했다. 뒤이어 이 부는 정부정책으로 확실하게 바꿀 수 없는 국민이 변화를 따라잡는 데 드는 비용을 댔다."(389p)
경제발전에서 중요한 것은 가족농에 의한 초기 부의 축적 및 제조업에 노동력 제공, 수출 중심 제조업과 선진 기술 습득, 이것을 뒷받침하는 금융, 이 모든 것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추진했던 정부의 역할이다. 여기서 성공사례는 동북 아시아, 즉 한국, 일본, 대만, 중국으로 나오고, 한국은 저자의 주장을 밑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역사적 증거가 된다. (동남아시아의 사례인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은 실패한 사례로 먼지처럼 까인다) 정부주도의 적절하고 강력한 성장정책이 빈국이 경제발전하는데 가장 중요하며, 경제가 성숙기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고전적인 자유경쟁 방식(정부개입 최소)은 옳지 않다는 것이 사실상 이 책의 저자의 주장이다. 그 근거로 아시아가 되는 것이고. 일정한 단계에 올라서지 않고 어설프게 시장을 개방한다면, 경제는 오히려 망할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초기 경제 단계에서의 농업생산의 증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경영이 훨씬 더 효율적이며, 따라서 토지개혁은 경제발전의 시초라는 것을 명확히 한다. 이 책은 역사의 아이러니로 가득차 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예가 이승만의 토지개혁이다. 울프 라덴진스키가 없었다면 과연 동북아시 경제발전이 가능했을까? 러시아 혁명 때 미국으로 탈출한 인물로서 토지를 농민들에게 돌려줄 것을 미국에 건의했던 인물이다. 공산주의자에 맞서는 방식이 공산주의자들의 방식(?!)으로 해결해야한다고 역설했다. 자유주의자들인 미국인들은 뜨뜨미지근한 반응이었지만, 맥아더를 설득하여 결국 일본부터 토지개혁이 실행되었다. 공산주의를 막는 방식으로 농민들에게 자기땅을 갖게 하였지만, 이것이 초기 농업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키는 역할을 했고, 제조업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군정장관 아처 러치는 사회주의정책이라는 이유로 토지개혁을 할 생각이 없었다. 북한은 토지개혁을 시행됐고, 민중의 공산주의 지지는 점점 높아져갔다. 미 국무부는 토지개혁을 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이승만과 러치는 계속 저항했다. 후에 1948년 토지개혁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이승만은 거부권을 행사했고,국회에서 다시 기각됐다. 지주의 입장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대다수였는데, 토지개혁법을 통과시킨 것을 저자는 높게 칭찬한다. 민주주의가 경제발전과 양립할 수 있는 예로 제시한다. 어쩔 수 없이 이승만은 토지개혁법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승만은 머뭇거리다 6.25가 발발하고, 1952년말에 토지개혁을 완료했다. 이승만의 토지개혁이 업적이라고 찬양하는 일각의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이승만주의자들이라고 알고 있다. 적어도 이 책에 근거한다면, 이승만은 토지개혁의 의지가 없었고, 토지 개혁은 얻어 걸린 성공사례가 될 것이다. 얻어 걸린 성공사례를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오늘 지구가 멸망하지 않았음이 또한 나의 업적이 될 것이다.
2장의 시작을 폴 베어록의 "경제사학의 속설과 역설"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경제사가 경제학에 기여하는 바의 핵심을 요약해야 한다면 모든 시기에 유효한 '법칙'이나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하겠다"
이 책은 이와 같이 아시아 경제사의 아이러니로 가득차있다. 순간 순간의 결단들, 선택들, 우연적인 외부요소들이 지금의 아시아 국가들의 성패를 가르는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물론 큰 틀은 앞에서 서술한 3가지 요소들이다. 그렇지만 성공한 정책을 다른 곳에 그대로 옮긴다고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으며,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 보인다. 중국이 성공할 것이냐? 실패할 것이냐?에 대해서도 저자는 유보적 태도를 견지한다.
아마도 우연적으로 벌어진 사태들의 정합적으로 만든 이야기가 역사가 아닐까라고 추측을 해본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박정희가 결과적으로 수출지향정책으로 대기업을 강제했다는 사실은 경제개발에서 중요했고 주효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이 책이 경제발전사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한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박정희 시절의 어두움은 부각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저자는 마지막에 분명히 얘기한다. 마지막에 이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조금 실망했을 뻔 했다.
"동아시아에서 3요소 접근법을 활용한 국가의 정부들은 종종 솔직하지 못하게 경제개발이 사회의 진전을 정의하는 유일한 척도인 것처럼 말했다. 이런 태도는 '아시아인'들이 부국의 국민들과 다른 기준을 가졌음을 시사하는 '아시아'식 가치에 대한 수사와 결합되어 있다. 경제적 발전은 사회 발전의 일부일 뿐이다. 개인의 자유 및 권리와 관련된 다른 요소들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현재 중국에서는 또 다른 정부가 후진적인 제도를 일부러 유지하는 것을 정당화하려고 인종적 예외를 주장하고 있다....(중략)...친구나 친척이 치외법권인 '흑감옥'으로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소형차나 모터바이크를 살 여유는 중요치 않다...."(391~392p)
어쨌든, 아시아의 근현대 경제사를 훑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책이었다. 두꺼워서 부담스럽기도 한데, 사례들이 재미있고, 평이하게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경제에 문외한이 나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중간중간 어렵거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그냥 넘어가도 큰 논지를 파악하는데는 무리가 없었다.